여자 부처도 많이 있어요. 우리 단체에서도 적어도 두 여자 출가승이 부처의 경지에 올랐었죠.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요. 뉴랜드 아쉬람에 그들의 사진을 게시했어요. 사람들이 그걸 간직하고 그걸 보고, 여자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상기할 수 있도록요. 올바른 영적 수행법만 안다면요. 만일 올바른 영적 수행법을 모른다면 그건 중국의 남악회양 선사가 말했듯이 『벽돌을 갈아도 거울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니까요. 그땐 승려, 남자들에게 그런 말을 한 거예요. 여성이 아니라 남성에게요.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여자가 출가하는 것도 어려웠죠. 성불을 하는 건 고사하고요. 참된 법문이 없다면요. 게다가 가족, 남편 심지어 아들한테까지 출가 동의를 받아야 했죠.
그러니 이 세상에서 여성이 되는 게 꼭 유리한 건 아녜요. 일부 작은 사회나 부족, 작은 원주민 공동체는 여성이 가장이 되거나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지도자 역할을 하는 모계제 사회예요. 그리고 요즘엔 여성이 다행히도 높은 지위에 많이 오르죠. 대통령, 수상까지 되고 외무 장관, 내무 장관 등 여러 부처의 장관도 되고 대기업의 CEO도 되죠. 저명한 예술가, 저명한 과학자, 저명한 의사 등 여러 방면에서 유명하고요. 우리 인간이 진화하고 우리 사회도 진화해서 이 지상의 여성들을 크게 존경할 만한 존재로 여기게 됐으니 신께 감사합니다. 그 점 신께 감사드립니다.
내가 다시 말하지만 여성도 분명 부처가 될 수 있어요. 이미 말했듯이 나는 관음보살이었어요. 여러 번 여성으로서요. 불교를 보면 마하가섭의 아내인 밧다 역시 아라한이 됐어요. 대세지보살도 여성이었고요. 그들은 여전히 아미타불 정토에 있어요. 그들은 일종의 여성스런 본질을 간직하고 있어요. 하지만 꼭 여성이나 남성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죠. 그들은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요. 부처이니까요. 요즘에는 많은 여성들이 스승이나 구루가 됐어요. 인도에 안아주는 성모, 안아주는 성자도 있고, 많이 있어요.
파라마한사 요가난다도 한 성자를 방문했는데 평범한 여성이었죠. 다른 여성들과 같았지만 그녀는 성자였어요. 이름이 테레제 노이만이죠. 금요일마다 그 성녀의 손과 발에 있는 상처에선 피가 흘렀어요. 주 예수처럼요. 주 예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의 장면을 재현, 재연하는 것이죠. 예수님이 안 되셨어요.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오, 정말 많은 스승들이 그렇게 고통을 당하셨죠. 더 심한 경우도 있고요. 그 얘기는 그만합시다.
석가모니 부처님 역시 이미 부처가 되신 후에도 몇 번이나 암살 시도가 있었죠. 한 번은 부처님의 발가락에 바위가 떨어져 상처를 입으셨죠. 그의 사촌이자 승려인 데바다타 때문에요! 데바다타는 승려였고 심지어 부처님보다 더 엄격한 수행 규칙을 시행했어요! 가령 석가모니 부처님은 오후에 승려들이 주스를 마시는 걸 허락하셨어요. 보통은 점심에만 식사를 했죠. 허나 부처님은 그 후, 오후에도 주스를 마실 수 있도록 허락하셨어요. 주스가 있다면요. 또한 여행 중인 승려는 언제든 식사할 수 있도록 허용했어요. 언제 다시 식사를 하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요. 한 곳에 정착하고 있어서 제시간에 나가고 제시간에 먹고 제시간에 돌아오는 게 아니죠. 부처님은 매우 관대하셨죠. 그들이 하루 한 끼만 먹었던 이유는 온 종일 탁발하러 다닐 순 없었기 때문이죠.
허나 하루 한 끼만 먹으면 부처가 된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이것도 잘못된 개념 중 하나예요. 그러니 약간 뚱뚱하고 배가 나오고 잘 먹는 승려를 보고 이 승려는 『수행을 잘 못 한다』라고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하루 한 끼만 먹으며 몹시 여윈 승려를 보고 그가 『매우 거룩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아니에요. 물론, 음식과 그 모든 것을 너무 탐하지 않도록 규율을 두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부처가 되는 건 아니죠!
불교에서 한 번은 배가 많이 나온 아주 뚱뚱한 미륵불상을 만들었던 걸 기억하죠. 그의 옆엔 큰 가방이 있죠. 그 가방엔 아마도 아이들에게 나눠줄 장난감과 선물이 가득할 겁니다. 하지만 그는 환생한 미륵불입니다. 그는 자신이 미륵불이란 걸 사람들이 믿지 않는 걸 알고 열반에 오를 때까지 그 사실을 한 번도 말하지 않았어요. 열반에 오르기 전, 그는 시를 써서 알렸죠. 『정말로 나는 미륵불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이 부처나 그리스도라 말하는 것은 문제나 고난을 자초하는 것과 같아요. 모든 스승들의 삶은 고난과 고통, 때로는 목숨을 잃는 것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부처는 상황에 따라 여성도, 남성도 될 수 있죠. 그 부처가 높은 세계에서 왔다면 때론 상황에 따라 남자나 여자로 나툴 수 있어요. 마치 관음보살처럼요. 부처님께서 말하시길 관음보살은 세상을 돕기 위해 남자도 여자도 될 수 있고 다양한 자리나 지위를 취할 수도 있다고 했어요.
『부처님께서 무진의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어떤 국토의 중생을 제도할 시 부처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관음보살이 부처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 […] 거사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관음보살이 거사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 재상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관음보살이 재상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 바라문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관음보살이 바라문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관음보살이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 장자, 거사, 재상, 바라문의 부인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관음보살이 장자, 거사, 재상, 바라문의 부인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 동남, 동녀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관음보살이 동남, 동녀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느니라」』 ~법화경 제25장에서 발췌
그리고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고 부처가 되지는 않아요. 그 때문은 아니에요. 만일 그렇다면 굶주리는 많은 이들이 부처보다 등급이 더 높아졌을 겁니다. 마음이 순수하고 신실해야 해요. 그리고 이미 수천, 수억 년, 무량 겁 동안 부처로 있었다면 때론 숙녀의 모습, 때론 신사의 모습으로, 남녀 출가승이나 혹은 평범한 사람, 남녀 사업가나 다른 많은 지위를 가진 이들로 나툴 수 있죠. 그러니 여성이라도 상관없이 부처가 될 수 있어요.
그건 내가 장담해요. 우리 단체 내의 이른바 나의 제자들, 신의 제자들도 상당수가 부처가 됐으니까요. 몇몇은 살아 있어요. 살아 있는 이들은 누군지 밝히지 않겠어요.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그들의 에고를 부풀리면 추락해서 등급이 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러긴 쉽죠. 이 세상에선 추락하기 쉽죠.
심지어… 광흠 화상의 이야기를 기억하죠. 그는 이 지구에 마지막으로 환생하기 600년 전에 아미타불의 세계에서 직접 왔었죠. 그래도 많은 실수를 했어요. 그는 아미타불의 세계에서 돌아온 후 그걸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인간으로서 이 지구에 머물렀던 6백생 동안의 모든 삶과 승려였던 마지막 생에서 자신이 했던 실수들과 잘못들에 대해 사람들에게 말했어요.
넘어지기가 너무 쉽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려주는 사람이 주변에 없으니까요. 도교에 따르면 사회 전체가 큰 염료통이니까요. 그러니 모든 이가 염료통에 뛰어드는 거죠. 이 세상이 염료통이라면 우리 모두가 비슷한 색으로 염색되겠죠. 아이가 성장해서 십대, 청소년이 되고 청년과 노인이 되는 건 아주 어렵습니다. 우린 실수를 쉽게 저지르고 늘, 항상 잘못을 저지릅니다. 오직 행운아만이 이미 어렸을 때부터 올바르게 살도록 가르쳐주고 지켜봐주며 계속해서 선하게 살도록 일깨워주고 말해주는 좋은 스승을 만날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은 이 사회, 이 세상에서 변치 않고 꾸준히 선행을 하면서 선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뒤엔 성불할 때까지 영적으로 수행할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