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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단경 2장, 2부 중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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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육조단경 2장에서 선불교의 고대 가르침을 계속 소개하겠습니다.‍

2장, 반야‍

『「바라밀」이 무언가? 이는 범어인데 「피안에‍ 이른다」는 말이고‍ 불교적 의미로는 생멸에서‍ 자유롭다는 뜻이다. 경계에 집착하면‍ 생멸이 일어나나니‍ 물에 물결이 이는 것과 같은 이것이 「차안」이고‍ 경계를 여의면‍ 생멸이 없어지므로‍ 물이 잠잠한 것과 같은 이것이 「피안」이라 하나니 곧 바라밀이다. 선지식들이여, 미혹한 자는 반야를 입으로만 외우는지라‍ 망령됨이 있고‍ 그릇됨이 있다. 모든 생각이 반야와 일치한다면 이것이 참된 성품이니라.‍

이 법을 깨닫는 것이‍ 곧 반야법이요. 이 행을 닦는 것이 곧 반야행이니라‍. 닦지 않으면 범부요. 일념으로 수행하면‍ 자신들이 부처님이니라‍.‍

선지식들이여‍, 범부가 곧 부처님이며‍ 번뇌가 곧 보리니 앞 생각이 미혹하면‍ 곧 범부요. 뒷생각을 깨달으면‍ 곧 부처님이라. 앞 생각이 경계에‍ 집착하면 곧 번뇌고‍ 뒷생각이 경계를‍ 여의면 곧 보리니라. 선지식들이여, 마하반야바라밀이 가장 높고 가장 위이며 가장 으뜸이다. 머무름도 없고‍ 지나가는 것도 없으며 또 오는 것도 없어서 삼세제불이 다 여기에서‍ 나오느니라. 마땅히 큰 지혜를 써서‍ 오온의 번뇌와 망상을‍ 타파하여라‍. 이와 같이 수행하면 반드시 불도를 이루며‍ 삼독이 변하여 계, 정, 혜가‍ 되리라.‍

선지식들이여, 이 법문은 하나의 반야에서 팔만 사천의 지혜를 내는데‍ 무슨 까닭인가? 하면 세상 사람에게 팔만 사천‍ 번뇌가 있기 때문이니라. 만일 번뇌가 없으면 지혜가 항상 나타나서‍ 자성을 여의지 않을 것이다』‍ 『이 법을 깨닫는 자는‍ 곧 「생각도 없고」‍ 기억도 없고‍ 집착함도 없어서‍ 미혹함을 일으키지 않으며‍ 자기의 참된 성품을 쓰므로‍ 지혜로써 미루어 보아‍ 일체 법을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이것이 견성하여‍ 불도를 이루는 것이다.‍

선지식들이여,‍ 만일 매우 깊은 법계와 반야삼계에‍ 들고자 하면 모름지기‍ 반야행을 닦고‍ 금강반야행을‍ 지니고‍ 외워야 되느니라.‍ 그러면 견성[見成]할 것이다.‍ 마땅히 알라.‍ 이 공덕이 한량없고‍ 끝없다는 것을‍‍ 경 가운데에서 분명히‍ 찬탄하였는데 말로써는 다할 수가 없느니라.‍ 이 법문은 곧 최상승이고‍ 큰 지혜가 있는 사람을‍ 위하여 설한 것이며‍ 근기가 높은 사람을 위하여 설한 것이라.‍

근기가 낮고 지혜가 얕은‍ 사람이 들으면 의심하는‍ 마음이 생기리라.‍ 왜냐하면 비유하건대,‍ 천룡이 염부제에 비를‍ 내리면 도시와 마을이 모두‍ 다 떠내려가는 것이 나뭇잎과 나뭇가지가 떠내려가는 것과 같지만 만일 큰 바다에 비를 내리면‍ 바닷물이 늘지도 줄지도 않는 것과 같으니라‍.‍ 만일 대승인과‍ 최상승인이 금강경을 들으면‍ 마음이 열리어‍ 참된 깨달음을 얻느니라.‍ 그러므로 본성에는 원래 반야의‍ 지혜가 있으며‍ 이 고유의 지혜를 써서‍ 항상 관조[觀照]하므로‍ 문자에 의존할 필요가 없느니라.‍ 마찬가지로 비는‍ 하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원래 천룡이‍ 바다에서 가져와서 모든 생물과 무생물, 중생과 초목들을 윤택하게 하고‍ 수백 개 강으로 흐르다가‍ 마침내 큰 바다에 들어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과 같이‍ 중생의 본성인 반야의 지혜도 또 이와 같으니라』‍

『선지식들이여,‍ 근기가 낮은 사람이 이 가르침(돈오)을 들으면 뿌리가 약한 초목이‍ 만약 큰비를 만나게 되면‍ 뿌리가 뽑혀 자랄 수 없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근기가 낮은 사람도 역시 이와 같이 원래 반야의‍ 지혜가 있으며 지혜가 큰‍ 사람과 차별이 없는데‍ 어찌하여 법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가 하면‍ 삿된 소견으로 업장이 무겁고‍ 번뇌의 뿌리가 깊기 때문인데‍ 마치 큰 구름이 해를 가릴 때 바람이 불지 않으면‍ 햇빛이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반야의 지혜도 역시 크거나 작은 것이 없는데‍‍ 일체의 중생이 자신의‍ 마음에 미혹함과 깨달음이‍ 같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미혹하여 밖으로만 보고 닦으며‍ 부처를 찾으려 할 뿐 자성을 깨닫지 못하나니‍ 이는 곧 근기가 낮기 때문이니라.‍ 만일 이 가르침(돈오)을 깨달아서 밖으로 닦는 것을 고집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항상‍ 정견[定見]을 일으켜서 번뇌와‍ 세속 일에 대한 괴로움이‍ 물들지 못하게 하면‍ 이것이 곧 견성[見成]이니라.‍

선지식들이여,‍ 안과 밖에 머무르지 말고‍ 가고 옴이 자유로워‍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면‍ 일체에 통달하여‍ 걸림이 없으며‍ 능히 이 행을 닦으면 반야경과 더불어 본래 차별이 없느니라‍.‍ 선지식들이여,‍ 일체의 수다라와 문자로‍ 되어 있는 대승과 소승의‍ 십이부경이 모두 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며 지혜의 성품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세워진 것이니‍‍ 만일 세상 사람이 없다면‍ 일체 만법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알아라,‍ 만법은 본래 사람에게서 일어난 것이며‍ 일체의 경서는 사람의 필요로 설한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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